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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여세린
  • 산업/경제
  • 입력 2018.02.19 15:53
  • 수정 2019.09.27 16:27

유한킴벌리, '리니언시'로 면죄부받고 책임은 대리점에

[인스팩션 여세린 기자] 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 (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를 이용해 본사는 면죄부를 받고 대리점에 처벌을 떠넘긴 사실이 19일 뒤늦게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한킴벌리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자사 23개 대리점과 135억 원대 정부 입찰 담합을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유한킴벌리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마스크, 종이타월 등 41건의 위생용품 입찰에 참여하면서 유찰을 방지하고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이에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본사에 2억1천100만 원, 23개 대리점에는 3억9천4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대리점만 과징금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리니언시는 담합 가담자가 자진 신고하면 처벌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하면 과징금과 검찰고발이 100% 면제되고, 두 번째 신고 기업은 과징금 50%와 검찰고발을 면제해 준다.

한킴벌리 본사가 대리점과의 담합을 공정위에 스스로 신고하고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유한킴벌리 본사와 대리점은 ‘갑을’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유한킴벌리가 본사만 빠져나가고 대리점의 ‘뒷통수를 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본사의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대부분의 대리점들이 위법 사실인지 모른 채 처벌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본사가 정보를 준 것으로만 알았지 위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앞서 유한킴벌리 측은 공정위 발표 이후 1차 입장문을 내고 “당시 대리점은 해당 입찰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한 바 있다. 며칠 후 대리점에 처벌을 떠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위법성을 인식한 후 즉시 신고했을 뿐이라는 2차 입장문을 내놨다.

유한킴벌리 측은 “당사는 공정거래 관련 위법성을 인식할 경우 즉시 신고 및 제도개선을 하는 정책을 갖고 있고 이는 당사의 유불리를 떠나 일관되게 적용된다”며 “자진신고와 관련된 비밀유지 의무로 당사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개별 대리점 등의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를 확인 후 예상치 않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징금 대납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리니언시’ 여전한 ‘면죄부’ 논란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적발에 효과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2016년 공정위에 적발된 담합사건 45건 가운데 60%에 달하는 27건이 리니언시를 통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 처벌 면제 사실은 당사자와 공정위 직원 모두 외부에 발설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처벌은 면제 받았지만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이번 유한킴벌리 담합 사건 역시 공정위는 본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고자 보호가 목적이지만 제도의 투명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담합 적발에는 도움이 되지만 어쨌든 위법 행위의 처벌을 면제해준다는 점에서 ‘정의에 반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리니언시로 감면받은 과징금은 8천709억 원에 달한다.

유한킴벌리 사례는 ‘갑을’ 관계까지 엮여 비난이 더욱 거세다. 담합을 주도한 '갑'인 본사는 자수를 통해 처벌을 면제받았지만, 본사가 끌어들인 '을'인 대리점은 과징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좌우하는 대기업들은 처벌을 피해가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죗값을 치르는 경우가 많아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에 면죄부가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담합유도자나 시장 최대 사업자에게는 리니언시로 인한 감면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또한 리니언시 결정에 소비자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담합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자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정위는 리니언시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립할 방침이다. 2005년에는 과징금 감면율을 정률로 정했고, 이후 상습 담합자나 늑장 신고자에 대한 감면 혜택도 없앤바 있다.

[여세린 기자 selinyo@insfac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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